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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11/09/27 11:29// Posted in 일상처리할 수 있는 최대 용량
Posted at 2011/07/22 20:44// Posted in 일상이제 폭발만 남은 상태.
스트레스의 원인은 언제나 상대적이지만
Posted at 2011/07/14 22:58// Posted in 일상분명 일의 난이도나 굴욕과 불쾌감같은 것들은 훨씬 적지만 특정한 임계점을 넘으면 언제나 동일한 수준의 스트레스가 생겨난다. 아마도 일의 질과 성격 자체가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일테고, 게다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해결한 일의 성과가 개인적인 행복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사업할 때나 프리랜서로 일하던 시절의 난이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물론 어떤 일들은 좀 더 통찰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일을 제외하고는 하는 일이란게 겨우 무기력한 입들의 비위 맞춰주기이거나 거기에서 시작한 장기적인 동의하기다.
나 같은 직언가에게는 이건 너무나 큰 시련이다.
참... 뭐랄까... 병신같다.
'미디어스케이프, 백남준의 걸음으로'전 도록글
Posted at 2011/05/15 18:13// Posted in 단상47일 간의 7가지 단상들
백남준을 이해하는 것은 미디어아티스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를 이해한다는 의미는 그의 예술관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의 작품에 쓰인 기술과 조형, 그리고 작품의 맥락을 이해해야한다는 뜻에 가깝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기술을 선도하거나 예측하는 형태를 띠고 있으며, 시대적이고 정치적인 혹은 철학적인 맥락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현재의 미디어아티스트들의 번민을 미리 경험했을 것이다. 반세기 전에 이미 그가 경험한 번민은 그의 작품을 공고히 했을지언정 그를 외돌토리로 만들었을 법하다. 그에 대한 글을 읽고, 그의 작품을 되새기며 보낸 몇 주는 과대평가되지 않은 백남준을 사유하게 된 시간이었다. 장문의 추앙을 꾸며내는 것보다는 몇 주간 백남준에 대해 적은 글들을 모아서 가감 없이 나열하고자 한다. 아래 글들은 2011년 3월 28일부터 2011년 5월 15일까지의 짧은 단상들을 모아 놓은 것이며, 읽기가 불가능한 글들은 폐기하였고, 날짜는 기록하지 않았다.
1. 형상의 유사성이 있다거나 구현에 있어 특정한 방식을 공유했다고 해서 복제를 단언하는 것은 지나친 과민반응이다. 같은 논리라면 현시대의 미디어아티스트들은 넓은 의미에서 백남준(혹은 그와 동시대 작가들)의 복제품들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조금 다른 맥락에서 보면 이를 부정할 수 없다. 백남준은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으며, 미학과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가 남긴 지식과 사고의 크기는 너무나 광대해서 그 중 일부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예술가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의 유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이것이 미디어아티스트들이 백남준을 이해해야만하는 소극적인 이유다.
2. 일부 입체주의 작가들도, 일부 미래주의 작가들도, 도시의 상징들을 잇는 레이저 작품을 만들었던 대니 카라반도, 그리고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한 시기의 백남준도 당대 물리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작품을 하지 못했을거라 확신한다. 백남준은 시간의 역설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 안에서 시공의 붕괴를 보여주기 위해 당시의 작품들을 구상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3. 마샬 맥루한이 1980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1999년부터 난 그의 예언 대부분을 믿지 않았다. 아마 세기말의 호기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백남준은 전자로 충만한 세계가 지닌 긍정적 가능성을 말했지만, 실상 전자는 불확실한 정보와 메시지의 그릇이었다. 전자 미디어는 혼재된 삶을 배경으로 탄생한 괴물들을 배양해왔다. 그는 예언가로 호도되기에 충분히 많은 글들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예언가로 비춰지지 않는 이유는 과거의 급진적이고, 과격하고, 고상하지 않은 해프닝들 때문일 것이다.
4. 2011년 어떤 작가는 기자에게 자신을 ‘제2의 백남준’이라고 써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아마 그의 작품이 백남준의 작품 중 전자와 조형의 결합이라는 극히 일부분의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미디어아티스트들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행하는 가장 큰 실수는 시각조형을 형상화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컴퓨터아트와 알고리즘아트와 같은 기술지향의 예술들이 미디어아트가 붕괴되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지나치지 않다.
5. 일부의 과학 이론과 공학 기술이 우연의 산물이었다고 할지라도 확대해석은 피해야 한다. 예술가와 기술자의 재기발랄한 실험이 새로운 예술 분야 탄생에 초석을 마련한 경우가 있지만 이런 우연을 과학과 공학의 발전 모두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6. 백남준 선생이 비선형 매체의 사용이 상식이 되어버린 현재의 삶을 충분히 살지 못하고 타계한 것은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작품들에 일부 비선형적인 매체들이 사용되긴 하지만 비선형성이 선형성을 압도할거란 생각에서 그것들을 사용했을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작품들만 보면 그는 선형적 미디어아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Random Access'를 말하고 있다.
7. 2011년 3월 28일부터 2011년 5월 15일까지, 수 년 전부터 지니고 있었던 혹은 수 주 전에 새로 구입한 백남준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47일을 보냈다. 책들은 나의 가방 속에 위치하며 무릎에 충격과 하중을 증가시켰다. 2011년 4월 11일 수축기 혈압이 174를 기록했으며, 2006년 5월 2일 오후에 다쳤던 우측 슬개골 하단 연골의 상처가 악화되었고, 2011년 5월 4일 중증 지방간 판정을 받았다. 2011년 5월 15일 올해 새로 구상한 내 작품의 아이디어가 1980년에 백남준이 발표한 ‘Random Access Information’에 몇 줄 수준으로 기록된 조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체리 : 장미과 Prunus속의 나무들 (벚나무류, 복사나무, 자두나무, 매실나무, 살구나무, 개복숭아, 개살구 등)
*사꾸라나무 = 왕벚나무
애쉬 : 물푸레나무과 Fraxinus속의 나무들 (쇠물푸레, 물푸레나무, 들메나무 등)
스프러스 : 소나무과의 Picea속의 나무들 (가문비나무, 독일가문비 등)
월넛 : 가래나무과의 Juglans속의 나무들 (가래나무, 호두나무 등)
버치 : 자작나무과의 Betula속의 나무들 (박달나무, 물박달나무, 자작나무, 거제수나무, 사스래나무 등)
*'박달'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모두 박달나무와 같은 속의 나무는 아님. 예) 까치박달
비치 : 참나무과의 Fagus속의 나무들 (너도밤나무)
메이플 : 단풍나무과의 Acer속의 나무들 (단풍나무류, 복자기, 복장나무, 고로쇠나무, 우산고로쇠)
엘더 : 자작나무과의 Alnus속의 나무들 (오리나무, 물오리나무, 사방오리)
엘름 : 느릅나무과의 Ulmus속의 나무들 (느릅나무)
출처) 네이버 우드워커 카페 / 상수리나무(beomho7621)님의 글
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Posted at 2011/03/27 16:39// Posted in 단상[뉴미디어기획 9] 아이폰-아이패드 충격과 창의성의 근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74372
이 글을 포함해서 잡스에 대한 최근의 몇몇 주장들의 논지는 모두가 인문학에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인문학이 이만큼이나 현실을 개선할 힘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잡스의 성공은 그들의 나라에 있는 특유의 무관심과 타인에 대한 방조도 한 몫 하지않았을까? 한국과 같이 선동과 집단행동이 유효한 나라에서는 도저히 자생할 수 없는 태도다.) 또 이 글에서 말하는 오픈소스 및 소셜미디어는 과연 나눔과 배려로 인해 구성되는 것인가? 협력은 맞지만 그 안에 나눔과 배려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을텐데, 글쓴이는 확대해석하고 재생산된 자신의 의견(이론)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이런 논조의 글(말)은 사실 술자리에서 이성의 개입이 부분적으로 불가해 졌을 때나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신념 혹은 허상, 몇가지 단상들
Posted at 2011/03/09 21:24// Posted in 단상.... 이오니아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태양이 지금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정의의 여신이 태양을 뒤쫓아가서 처벌할 것이기 때문에 태양은 지금처럼 행동한다고 주장했다...중략... 물리법칙들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 대상들은 죽은 물체들인데도 말이다. 이를테면 소행성에게 타원으로 움직이라고 설득한다고 상상해보라.
-위대한설계 중, 스티븐 호킹-
2.
대상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때 "왜"라는 질문은 더 유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