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

Posted at 2010/06/30 02:35// Posted in 단상
작업을 하다보면 다양한 소재와 심오한 주제에 대한 갈증이 강해지기 마련인데, 특히 작업의 성격이 디자인과는 동떨어져있을 때 더욱 심해진다. 지난 10여년간 미디어 작업을 해오면서 가장 많이 나를 소개한 단어는 디자이너다. 디자이너라는 단어는 의외로 많은 경우에 좋은 보호막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을 때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서있는 작업을 공개했을 때 혹시나 작업을 향해 돌아올 수 있는 날 선 비평의 중심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디자이너라는 단어는 매우 유용하다. 2010년은 이제 내가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지 10년이 되는 시점이다. 10년은 젊은 나이에 섣부른 (물론 의도한 것이 아닐 지라도) 데뷔가 만든 수 많은 오해와 고민과 남용을 경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올해가 되서야 난 내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내 이야기를 할 용기가 생겼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불필요한 감정의 동요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도 있겠다. 또한 작품에 대해서도 시대적인 혹은 정치적 맥락을 보여준다고 해서 가치있는 것인지, 내 개인사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모두가 들어줄 만한 이야기인지(물론 내 20대의 상당한 기간은 절망 그 자체였지만..)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게 솔직한 이야기인지 확신이 서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 해의 멈추지 않는 고민 끝에 내 기민한 뇌와 모든 감각이 요동치며 가리키는 곳을 찾은 듯 하다. 인간이나 삶 혹은 본성이라는 단어로 축약될 수도 있겠다. 구태의연한 단어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끌어낸 앎이다.
2010/06/30 02:35 2010/06/30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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